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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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선사시대부터 이어온 인제의 역사를 한눈에...

고구려시대의 인제

고구려 지도

인제지방은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터를 잡고 생활해 왔다. 이는 북면 월학리 구미동 지역의 지석묘(支石墓) 군이나 남면 남전리에서 발견된 지석묘들이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그러나 전해오는 기록이 없어 확실하다고는 볼 수 없으나 지리적으로 보아 다른 관련 자료들을 살펴보면, 기원전 한무제(漢武帝) 2년에 사졸(射卒)들이 기자조선(箕子朝鮮)에 불법래습(不法來襲)하여 위우거(衛右渠)를 벌하고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함에 있어 이 고장은 임둔군(臨屯郡)에 속해 있었고, 낙랑(樂浪)이 번성하던 때에는 낙랑군 동부도위(東部都尉)에 속해 있으며 중기(中期) 이후에는 영서지방과 영동지방을 대별해서 예(濊)와 맥(貊)이라는 부족국가 형성되었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영서에 속하는 인제는 맥(貊)국에 속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지금의 인제군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인제, 서화, 기린의 역사적인 발자취가 다르기 때문에 각종 문헌을 참고하여 소상히 밝힌다.
고려 인종(仁宗) 23년(1145)에 간행된 『삼국사기』의 지리지 편을 보면 <.....陽構縣領縣三 蹄縣本高句麗猪足縣景德王改名今麟蹄縣馳道縣本高句麗玉岐縣景德王改名今瑞禾縣三嶺縣....>이라 기록되어 있다. 풀이하면 양구현에는 희제현, 치도현, 삼령현이란 세 개의 영현(領縣)이 있다. 희제현은 고구려때 저족현이었고, 치도현은 고구려때 옥기현이라 하였는데 경덕왕이 저족현은 인제현으로 하고 치도현은 지금의 서화현으로 바꾸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인제군의 건치연혁이 보다 소상히 기록되어 있는 사료는 1481년에 간행되고 1530년에 증보(增補)된 『동국여지승람』이다.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기를 <本高句麗猪足縣一云烏斯回新羅改 蹄爲楊麓郡領縣.....『屬縣』瑞和縣和一作禾一名瑞成在縣北六十里本高句麗玉岐縣新羅景德王改馳道爲楊麓郡領縣.....>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본래 고구려의 저족현 (猪足縣)이나 오사회(烏斯回)라고도 하였다. 신라때에는 희제현으로 고쳐 양록군의 영현(嶺縣)으로 하였다. 속현인 서화현은 화(和)를 (禾)로 쓰기도 하고 일명 서성이라고도 부르는데 저족현의 북쪽 60리에 있다. 본래는 고구려의 옥기현이었으나 신라의 경덕왕이 치도(馳道)로 고치고 양록군의 영현으로 하였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일련의 기록들로 보아 현재의 인제지방은 구고구려가 건국된 후 5세기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391~412) 때에 이르기까지는 신라의 영토에 속해 있었다.
고구려가 강원도를 점령한 1백년 후인 신라 진흥왕(眞興王) 원년 신미년(辛未年:551)에 백제와 신라가 연합하여 고구려를 공격하여 백제는 한강 하류를 점령하고 신라는 죽령(竹嶺) 이북 10군(강원도)를 점령함으로써 인제는 신라의 영토에 속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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