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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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리

인제군 인제읍지도(위에서부터 하단으로 서화면, 북면, 인제읍, 남면, 기린면, 상남면 순으로 되어있습니다.) 군의 소재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본래 현내면(縣內面)이라고 하여 하도리(下道里), 상도리(上道里), 덕산(德山), 덕적리(德積里), 청계동(?溪洞), 고사동(古沙洞), 7개리를 관할하였는데 1906년에 군내면(郡內面)으로 고치고 상도(上道), 동(東), 남 (南), 북(北), 합강(合江), 덕산(德山), 니(泥), 가아(加兒), 덕적(德積), 고사(古沙), 차평(車坪)의 11개 里로 개편(改編)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行政區域) 통폐합에 따라 동면(東面)의 원대(院垈), 하추동(下楸洞), 이탄(耳呑)을 편입(編入)하여 귀둔(貴屯), 하추(下楸), 원대(院垈), 가리산(加里山), 고사(古沙), 남북(南北), 상동(上洞), 합강(合江), 가아(加兒), 덕산(德山), 덕적(德積)의 11개 리로 개편하고 1916년 인제읍(麟蹄邑)으로 고쳤다. 1948년 38˚선이 생기면서 38˚선 이북 10개 리가 共産 治下로 넘어가고 38˚선 이남 원대리는 홍천군(洪川郡) 신남면(新南面)에 편입되었다가 1951년에 다시 편입되어 11개 리를 관할하게 되었으며, 1979년 5월 1일 대통령령 제9409호에 의거하여 읍으로 승격하였으며 행정리(行정리)는 19개리다. 동쪽으로는 양양군 서면(西面), 서쪽은 남면(南面), 남쪽은 기린면(麒麟面)과 남면 북쪽은 북면에 닿아 있고 군 단위 기관이 집중되어 있다

덕산리

덕산(德山) 아래가 되어 덕산(德山)이라 하였으며 1916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차평리(車坪里)를 병합하여 덕산리(德山里)라 하였으며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고춧골
선바우 아래에 있는 곧은 골짜기를 말한다.
광대목
덕산 동쪽에 있는 산인데 산의 형세가 광대가 노는 형국이라고 한다.
귀영소
웃말 앞에 있는 소(沼)로 모양이 구유와 비슷하다.
노로목고개
덕산리와 고사리의 경계 지점으로 내린천 변에 있으며 453지방도로가 개설되기 전에 바람굴 부근으로 넘어 다녔는데 그 고개가 노루목을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나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늪둔지
덕산 북쪽 끝 둔지에 있는 마을이며 밤나무가 많았다.
덕봉(德峯)
덕산리 남쪽에 있는 산으로 모양이 덕이 있어 보인다고 한다.
덕산1(德山)
덕산리
덕산2(德山)
덕봉
독산고개
양짓말에서 북면 원통리로 가는 고개
무당소
웃말 위쪽에 있는 소(沼)
바람굴
샘터와 노루목 사이에 발달된 석각이 있으며 이곳에서 찬 바람이 나와 한 여름에도 시원하다 하여 바람굴이라 하였다. 도로 확포장공사로 바람이 나온다는 석각 일부는 파손되었지만 지금도 이곳을 지나면 시원하다.
박쥐굴
덕산 양지마을에서 동북쪽 3㎞ 지점에 있는 자연동굴로 박쥐가 많이 서식하고 있었으며 피난처의 구실도 되었다.
사곡(寺谷)
절골
상촌(上村)
웃말
샘터
합강대교에서 노루목 고개 쪽으로 500m 지점에서 나오는 샘으로 여름에는 매우 차고 겨울에는 얼지 않는다.
선바우
덕산 동쪽 산 위에 우뚝 서 있는 바위이며, 바위 밑에서는 좋은 샘물이 나온다.
수변촌(水邊村)
아랫말
수병
아랫말
아랫말
덕산 아래에 있는 마을로 내린천의 강변에 위치하였다.
양지말
덕산 양지쪽에 있는 마을로 양지촌 중촌이라고도 한다.
여네골
덕산 동쪽에 있는 마을로 냇물이 흘러오다가 이곳에 이르러 갑자기 줄어들었음에 연유하여 부른 지명이다.
연애골
여네골의 변성된 이름
웃말
덕산 위쪽에 있는 마을로 상촌(上村)이라고도 한다.
율평리(栗坪里)
늪둔지
음지말
덕산리 음지쪽에 있는 마을
인골
덕산리 동쪽에 있는 마을로 난리때 피난처가 됐다고 한다.
인동(人洞)
인골
장군바위
무당소 밑에 있는 바위로 장군이 서 있는 모습이다.
장군석(將軍石)
장군바위
절골
웃말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절이 있었다. 사곡이라고도 부른다.
중촌(中村)
양짓말
진사집터
양짓말 서쪽에 있으며 진사(進士) 해주 최씨가 살았던 집터를 말한다.
차평리(車坪里)
아랫말 북쪽 들 옆에 있는 마을로 수레가 다니게 될 것이라고 해서 차평리라고 한다.
하촌(下村)
아랫말
한양동(漢陽洞)
음지말 남쪽 내린천변에 있는 마을로 조선시대에 한양 사람이 와서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
한양못
한양촌에 있었던 못으로 넓이가 4천여평에 달했지만 지금은 매몰되어 자취도 찾아 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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