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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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선사시대부터 이어온 인제의 역사를 한눈에...

통일신라시대의 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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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선덕왕 6년 정유년(丁酉年:637)에 군사상의 요지로 우수주(牛首州:春川)에 군주(軍主)를 두어 다스렸는데 이때에 양록군(楊麓郡:楊口)의 속현으로 하고 인제는 희제현(희蹄縣)으로 개칭하고 서화는 신라 경덕왕 때 치도현(馳道縣) 기린은 종전과 같이 기지군(基知郡)으로 불렀다.

신라 문무왕 13년 계유년(癸酉年:673)에 우수주(牛首州)를 수약주(首若州:烏竹乃 또는 首次若 이라고도 부름)라 일컬었고, 경덕왕 16년 정유년(丁酉年:757) 12월 전국 9주의 군·현(郡·縣)명칭을 중국식으로 고쳤는데 9주의 명칭은 상주(尙州) 양주(良州:梁山) 강주(康州:晋州) 한주(漢州:서울) 명주(溟洲:江陵) 태주(態州:公州) 전주(全州) 무주(武州:光州) 삭주(朔州:春川)로 하였다.

주(州)는 지금의 도와 같은 대단위 구역이고, 주밑에 군 현을 두었으며, 주에는 총관(摠管), 군에는 태수(太守), 현에는 현령(縣令) 또는 현감(縣監)이 장(長)이 되었다. 그리고 마을 단위로 촌주(村主)가 행정업무를 주관하였고 소경(小京)을 다스리는 행정책임자는 사신(仕臣) 또는 사대(仕大)라고 하였다.
현재의 강원도는 당시 삭주와 명주로 구역지어졌는데 춘천을 중심으로 한 삭주가 대체로 영서지방을 관할하였고, 강릉을 중심으로 한 명주가 영동지방을 관할하였는데 그 지역은 매우 광대하였다. 삭주의 관할구역은 북쪽으로는 현재 함경남도 덕원(德源) 서쪽으로는 경기도 가평(加平) 남쪽으로는 경상북도 영주(榮州) 동쪽으로는 태백산맥까지를 관할구역으로 하였고, 명주는 북쪽으로 통천(通川), 남쪽으로 영덕(盈德) 서쪽으로 태백산맥, 동해까지로 하였다. 따라서 인제는 지리적으로 보아 영서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삭주에 속해있었다.

통일신라가 몰락하면서 백제지방에서는 견훤이 일어나 후백제를 세우고(892), 구고구려 지방에서는 궁예가 일어나서 후고구려를 세워(901) 후삼국시대가 열렸다.
삼국사기에 <九年秋八月弓裔擊取猪足狼川二郡又破漢州管內夫若鐵圓等十餘郡縣>이라 기록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다시 후고구려에 속하게 되었다.
궁예는 904년에 수도를 철원(鐵圓)으로 옮기고 국호를 마진(摩震)이라고 하였다가 911년에는 다시 국호를 태봉(泰封)이라고 하여 인제는 태봉국의 영토가 되었다. 그러나 궁예는 918년에 그의 부하였던 왕건에게 쫓겨나고, 왕건(王建)이 신숭겸(申崇謙) 홍유(洪儒) 배현경(裵玄慶) 등의 추대를 받아 즉위하게 되고 국호를 고려라 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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